※ 영성일기 ※


중국 제5세대


1. 중국 제5세대의 배경

1965년 11월 문예 비평가 야오 웬웨인이 사회학자이며 경극 작가 우한이 쓴 <해서파관(海瑞罷官)>에 대하여 문예지 <문회보>에 ꡐ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한다ꡑ라는 비평을 게재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중국 대륙은 ꡒ문화혁명ꡓ이라는 전례없는 회오리 바람 속에 휘말리게 된다. <해서파관>은 처음에는 그저 하나의 공연일 뿐이었으나 그 내용은 황제를 마오 쩌뚱으로, 해서를 펑 더화이로 바꾸어 볼 수 있는 풍자적 정치성이 있었다. 그러자 당시 등 샤오핑에게 권력을 양도하고 물러나 있던 마오 쩌뚱에게 지앙킹, 캉성 등이 이를 정치 문제시 하도록 호소하고, 군 중앙지 <해방군보>와 당기관지 <인민일보>에 이 문제를 게재하면서 확대시킨다. 이어 당 핵심인물들을 반사회주의자로 규탄하는 학생시위가 터지고 유혈 충돌이 발생하면서 결국 당정 기능이 완전히 마비되고 극도의 혼란, 불안, 무질서 상태로 빠져들게 된다. 이에 마오 쩌뚱은 군의 개입을 결정하고 공산당 내의 반대파들을 숙청, 살해했으며, ꡐ인민으로부터 배운다ꡑ는 기치 아래 청소년들을 농촌과 공장으로 보내게 된다. 마오 쩌뚱 일가의 정권 회복 운동이며 청소년을 선동한 정풍 운동의 모양을 띄었던 이 ꡒ문화대혁명ꡓ은 혁명이념파의 이러한 외면적 승리에도 불구하고 불신과 불안, 비탄만을 남겼을 뿐이었다. 

문화대혁명이 시작된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영화는 사상 유례없이 위축된다. 당시 모든 가치관의 척도가 되던 마오이즘에서 벗어나는 가치들은 일제히 ꡐ적ꡑ으로 간주되고 과거의 모든 영화는 비판되었다. 이 시기 영화들의 내러티브 구조는 참과 거짓, 생산과 파괴, 문화와 원시 등의 이항대립적인 단순도식의 틀을 가졌고 이로서 결국 영화는 리얼리즘의 본 궤도에서 벗어나 형식주의, 단순주의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파쇼적 상황하에서 새로운 영화 제작자들은 문화혁명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기존 영화에 대해 비판적 관심으로 반기를 들어야 했고 예술에 정치 권력이 간섭함으로서 중국영화는 그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맞게 된 것이다.

문화대혁명의 살벌한 폐허 위에서 10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학생과 시민들은 결국 1976년 4월5일 천안문 광장에서 시위를 일으켰고 같은 해 마오 쩌뚱의 사망은 중국에 있어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마련하였다. 사실 10년간의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국의 사회문화계는 말 그대로 초토화 상태였다. 영화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영화인들이 군대와 농촌으로 쫓겨나 있었고 그동안 제작된 영화도 연간7-8편의 마오 쩌뚱 사상을 선전하는 획일화된 영화가 전부였던 것이다. 문화혁명이 끝난 후 자유화 물결은 여러 분야에서 문혁을 청산하려는 움직임으로 구체화 되었다. 그동안 금지되었던 많은 영화들이 해금, 복권되었고, 1966년부터 1978년까지 문을 닫았던 베이징 영화 아카데미도 다시 수업을 재개하였으며, 문화혁명기에 현장에서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던 20대 초반의 학생들을 받아들여 전문적인 영화 인력의 충원을 시작했고 그동안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30대 전후의 젊은이들이 대거 영화 산업에 유입되었다. 바로 이들, 문화혁명 기간 동안 청소년기를 보내고 문혁 이후 영화공부를 한 1982년 베이징 영화 아카데미의 졸업생들이 바로 제 5세대의 근간을 이룬다.

2. 중국 제5세대의 경향

중국 제5세대 역시 과거 선배들의 영화관을 파괴하면서 등장했다. ꡒ영화는 젊은이의 예술이다. 영화에는 창조적인 힘이 필요하고 항상 새롭지 않으면 안된다ꡓ 라는 장 예모의 말은 이들 제5세대의 영화관을 잘 대변해 주고 있는데, 이들은 전통을 답습하지 않고 역사, 현실, 인생에 대한 예술가의 진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여 인간과 이성에 대한 재발견의 시각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부조리에 처한 인간 상황에 초점을 맞추어 예술의 현대성을 추구했으며 영화 자체의 표현 방법을 개척하고 양식의 독자성을 추구했다.

사실 제5세대 영화의 공통적인 특징을 한마디로 말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들의 영화가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전 세대와는 다른 ꡐ다양성ꡑ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ꡐ경험ꡑ이라는 측면에서 공통된 기본요소를 지니고 있다. 문화혁명 중에 하방(下放)되어 10년간 농촌이나 군대에서 노동을 했으며 문혁으로 비롯된 중국 현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던 특이한 경력의 세대인 것이다.

이들 제5세대의 사상적, 내용적 특징에 대해 영화 감독 우쯔녀우는 ꡒ첫째 제 5세대 영화는 국가보다 인민에 관심이 더 크고, 둘째 현재 생활의 리얼리티보다 민족 문화에 관심이 더 많으며, 셋째 사회비판이나 정치 문제 등 민감한 부분에 대한 언급을 가급적 피하고 운명, 종교 등 삶의 진실에 더 치중하고, 넷째 시청각 요소의 표현 영역에 더 관심을 가진다ꡓ고 요약하고 있다. 

제 5세대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새로운 영상 언어의 형식적 특성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줄거리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 이전 세대의 작품들에서는 스토리가 가장 중시되었다. 사건의 인과 관계 및 등장인물의 운명은 영화의 플롯 속에 적절히 적절히 배치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제 5세대는 당시 중국 관객들에게 익숙했던 전통적 스타일에서 벗어나 이전까지의 중국 영화들과는 판이한 시각으로 다루었다. 예를 들어 첸 카이거의 <황토지(1984)>나 <해자왕(1987)> 등의 스토리를 기술하는 것는 어려운 일이다. 또한 스토리가 있다해도 그 스토리 자체는 영화 사상을 표현하는데 중요한 요건이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찾아볼 수 있는 형식적 특성은 쇼트와 쇼트의 연결에 있어 기교가 없다는 점과 불균형한 화면구성이다. 즉 제 5세대 감독들은 시간, 공간과 사건의 관련성을 유지하기 위해 화면과 화면을 조합하는 일이 적으며 구도에 있어서도 파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장 준자오의 <하나와 여덟>은 바로 이 화면의 균형을 깨뜨린 구도와 조형에 의해서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기도 한데, 이 영화는 이러한 화면의 조형에 의해 비틀리고 억압된 인간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광선과 색채의 사용에 있어서도 그들은 독특한 방법을 사용한다. 제 5세대의 감독들은 영화의 구성요소로서의 색채에 관해 깊이 고려하고 있다. <황토지>의 황갈색, 황지엔신의 <흑포사건>의 붉은 색과 흰색, 장예모의 <붉은 수수밭>의 붉은 색 등은 영화 자체 내에서 모티브를 한층 두드러지게 하는 효과를 내며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제 5세대 영화들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특징들은 종전의 중국영화에서 놓쳤던 주제와 그것의 접근 방법을 신중히 찾으려는 노력이며, 이는 헐리우드와 소련의 영향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자유롭고 독특한 영화에 대한 욕망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제5세대들은 찬사와 함께 여전히 한편으로 비판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도 제5세대가 비판을 받는 부분은 동시대의 삶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을 끊임없이 억누르고 있는 문화혁명의 그림자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그 비판의 원인이다. 하지만 이들 제5세대가 사상의 자유로운 해방으로 인간성의 가치를 회복하고 영화를 정치적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그들의 전통에서 찾은 독특한 영상 미학으로 영상예술의 본질적 측면을 탐구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제5세대가 그들의 영화 속에서 이루어낸 커다란 성과인 것이다.

3. 대표적 감독과 작품들

1) 첸 카이거

첸 카이거는 중국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대비 또는 투영하면서 중국인의 과거와 현재를 다각도로 조명하며 특히 중국 전통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면서 우화적, 직관적, 철학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그는 ꡐ스스로가 중국인이기에 중국의 전통을 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겠다ꡑ는 의지를 여러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과거의 문화 혁명과 현재의 개방 정책에 이르는 자신의 경험들을 특정의 이데올로기로 구속지우려 하지 않는다. 그는 상징을 이용해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있지만, 단지 그가 경험한 시대적 변화를 영화 속에 진실하게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초기작품 <황토지><대열병><해자왕>이 자신의 실체험을 근거로 한 지난 과거에 대한 반성을 뜻하는 작품이었다면 4년여의 공백 기간을 가진 이후의 작품인 <현 위의 인생>이나 <패왕별희>는 현재의 보편적 중국인에 대한 잊혀지고 지워져 버린 주체성 회복을 위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표현에 있어서 과거의 상징은 극의 구조에 더욱 의존한다.

2) 장 예모

<황토지> <대열병> <노정> 등 대표적인 제5세대 영화들에서 촬영감독을 맡아 충격적인 영상미학을 보여주었던 장예모는 <붉은 수수밭>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그는 특히 인간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분출하며 여성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여성에 대한 관점은 제5세대 중 장예모가 가장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의 영화에서 나타나는 여성 이미지는 힘있고 독자적이고 강한 존재로 부각된다. 그의 영상은 강렬한 색채와 자연광 사용으로 뛰어난 사실성과 극적 효과를 주며 제5세대 중 가장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실적 이야기 구성을 보여준다. <국두> <홍등> <귀주이야기> 등 장예모 작품의 내러티브 구조는 중국적이기 보다는 서구적 취향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3) 티엔 주앙주앙

티엔 주앙주앙은 82년 졸업 후 <홍가(紅家)> <9월> 등의 작품을 공동 연출하고 독립 연출 첫 작품인 <사냥터에서>를 발표하여 대담한 다큐멘터리 기법의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요리스 이벤스에게 절찬을 받았다. 역시 다큐멘터리 기법의 <말도둑>은 티벳 사람들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그려 인류학적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주목을 받은 <푸른 연>은 관찰자적인 구성과 유머, 아이러니 등으로 중국역사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인간의 내면, 인간의 정신 세계에 특히 관심을 둔 그의 영화들은 제5세대 작품들 중에서도 가장 파격적인 내용적 특징을 갖는다. 

 

[참고 문헌]

1. 아시아 영화의 이해(주윤탁, 김지석 편집) - 제3문학사
2. 아시아 영화를 다시 읽는다(김지석) - 한울
3. 세계 영화 기행1.2 (조재홍 외) - 거름
4. 영화론의 전개와 제3의 영화(김정옥 외) - 시각과 언어

인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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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Inception
감독 크리스토퍼 놀런

제작 크리스토퍼 놀런
에마 토머스

각본 크리스토퍼 놀런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지프 고든 레빗
와타나베 켄
마리옹 코티야르
엘런 페이지
킬리언 머피
톰 하디
딜리프 라오
톰 베렌저
마이클 케인

촬영 월리 파이스터

편집 리 스미스

음악 한스 치머[1]

제작사 레전더리 픽처스
싱카피

배급사 워너 브라더스

개봉일 영국 영국 2010년 7월 8일
미국 미국 2010년 7월 16일
대한민국 대한민국 2010년 7월 21일
시간 148분
나라 미국 미국
영국 영국
언어 영어
등급 미국 미국 PG-13
대한민국 대한민국 12세 관람가

제작비 $ 1억 6천만[2]
수익 $ 825,446,026[2]

웹사이트 http://www.inceptionmovie.com

인셉션》(Inception)은 2010년 영국, 미국 합작의 SF 액션 스릴러 영화이다. 크리스토퍼 놀런이 감독, 각본, 제작을 맡았다. 주연은 영화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맡았으며, 조연으로 와타나베 켄, 조지프 고든 레빗, 마리옹 코티야르, 엘런 페이지, 킬리언 머피, 톰 하디, 마이클 케인, 톰 베린저 등이 출연하였다.

2001년 감독 놀런은 자각몽(루시드 드림)에 영감을 받아 '꿈 도둑' 소재의 호러 영화로 구상 중이던 이야기의 제안서를 워너 브라더스에 냈다. 이후 큰 규모의 영화 제작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 놀런은 일단 인셉션 계획안에서 물러나 대신 《배트맨 비긴즈(2005)》, 《프레스티지(2006)》, 그리고 《다크나이트(2008)》를 만들었고 《인셉션》의 각본은 2009년 2월 매입되었다. 2009년 6월 19일 도쿄에서 시작해 2009년 11월 22일 캐나다에서 끝날 때까지 6개국 4개대륙에서 촬영되었다. 제작에는 워너 브라더스레전더리 픽처스에서 공식적으로 1억 6천만 달러의 비용이 지출되었다.

2010년 7월 8일 런던에서 최초 개봉했으며, 이외의 지역에서 2010년 7월 16일 아이맥스 영화관과 일반 영화관에서 동시 개봉했다. 흥행에 성공하여 전 세계적으로 총수익이 8억 달러를 넘어 최근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DVD 판매는 6억 8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작품 면에서도 폭넓은 호평을 받아 수많은 비평가들로부터 독창성, 캐스팅, 음향, 시각효과로 찬사를 받았다. 아카데미상 촬영, 각본(창작), 음향편집, 시각효과상 후보에 올라 모두 수상했다.

줄거리


출연진

2010년 7월 개봉일의 배우들. 왼쪽부터 킬리언 머피, 마리옹 코티야르, 조지프 고든 레빗, 엘런 페이지, 와타나베 켄, 마이클 케인,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미닉 "돔" 코브 역): 추출자. 다른 사람의 꿈에 침투하여 기밀을 빼내는 전문가이다. 코브는 아서, 아리아드네, 임스, 사이토, 유서프로 구성된 팀을 이끌며, 꿈을 통해 로버트 피셔의 의식과 행동에 영향을 주고자 한다.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에 처음으로 캐스팅된 배우이다.[3] 놀런 감독은 디카프리오와 함께 영화를 촬영하고자 수년간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었고, 인셉션이 그가 출연한 놀런 감독의 첫 영화가 되었다.
  • 조지프 고든 레빗(아서 역): 포인트맨. 작전 대상자에 대한 사전 조사를 담당하며, 작전 진행 과정을 이끈다.
  • 엘런 페이지(아리아드네 역): 설계자. 마일즈 교수의 제자로, 미로를 비롯한 꿈의 세계를 설계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은 테세우스에게 칼과 실뭉치를 주어 미궁을 탈출하게 한 그리스 신화의 인물에서 비롯된 것이다.[4]
  • 톰 하디(임스 역): 포저(위조사). 로버트 피셔를 조종하기 위해 꿈 속에서 여러 인물로 변신하여 활동한다.
  • 와타나베 켄(사이토 역): 투어리스트(관광객)이자 의뢰인. 코브의 팀을 고용한 기업가이며, 작전의 확인을 위해 그들과 함께 꿈 속에 들어간다.
  • 딜리프 라오(유서프 역): 약제사. 꿈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진정제를 만든다.
  • 킬리언 머피(로버트 피셔 역): 표적. 거대 에너지 그룹의 후계자로, 코브의 인셉션 팀의 표적이 된다.[5]
  • 톰 베렌저(피터 브라우닝 역): 피셔의 기업의 중역이자, 로버트 피셔의 대부이다.[1]
  • 마리옹 코티야르(맬 러리 "맬" 코브 역): 셰이드(피사체). 사망한 아내에 대한 코브의 투영물로, 그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방해한다. 이 영화에서의 적대적 존재로, 그녀는 실제 맬의 자살을 코브 때문이라 주장한다. 코브는 꿈 속에서 이 투영물을 제대로 통제할 수 없어, 그의 역할을 설계자에서 추출자로 바꾸게 된다.
  • 마이클 케인(스티븐 마일스 교수 역): 코브의 스승이자 장인.[6] 그의 제자인 아리아드네를 추천하여 코브의 팀에 합류하게 한다.[7]

발단

놀런은 '꿈 도둑'에 대해 80페이지의 콘셉트 위에서 《인셉션》을 호러 영화로 구상했는데, 결국에는 처음 의도와 달리 범죄 스릴러 영화로 쓰게 되었으며 대본을 고치는 데 9~10년이 걸렸다고 했다. 처음 영화 제작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매트릭스(1999)》, 《다크 시티(1998)》, 《13층(1999)》, 그리고 《메멘토(2000)》 같은 영화들도 어느 정도는 그 시대 관객이 진짜 현실로 생각할지도 모르는 원칙 위에 세워져 있었다며 그 작품들에 영항을 받았다고 말했다.

영화는 에마 토머스와 크리스토퍼 놀런 부부 팀의 회사인 싱커피 필름(Syncopy Films) 공동제작했고, 놀란이 감독과 각본을 겸했다.

놀런이 처음 간 곳은 워너브라더스였다. 2001년, 하지만 큰 규모의 영화 제작을 경험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끼면서, 배트맨 비긴즈와 다크나이트에 착수했다. 그는 금세 인셉션 같은 필름은 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는데 "꿈과 관련된 얘기를 하자마자, 사람 마음의 잠재력은 무한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영화의 규모도 무한하게 느껴져야 했다. 영화의 끝에서 당신은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고 느껴야 했다. 그래서 엄청난 규모를 작업하게 되었다." 다크나이트 촬영 이후, 놀란은 인셉션을 만들기로 결정하고 대본을 갈고 닦는데 6개월을 보냈다. 놀런은 대본을 끝맺을 해결책은 여러 사람들이 같은 꿈을 공유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생활이 한 번 없어지면, 당신은 타당성과, 힘과, 드라마틱한 결과성을 가지고 사람들이 의미있게 상호작용 할 수 있는 대체세계를 무한적으로 창조할 것이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이 영화에 가장 먼저 캐스팅된 배우다. 놀런은 몇 년동안 그와 일하려고 노력했으며 몇 번 그와 만났지만, 인셉션 전까진 그의 영화에 나오도록 설득할 수 없었다. 인셉션에서 디카프리오는 마침내 출연하기로 했다. "설정이 매우 흥미로웠다- 이 꿈 도둑 생각이랑 그리고 캐릭터들이 어떻게 그의 꿈세계를 드러내고 궁극적으로 그의 진짜 삶에 영향을 미칠지." 그는 대본을 읽고 나서 "굉장히 종합적으로 잘 썼는데, 크리스가 지난 8년 동안 그의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친 생각들을 분명히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 고 밝혔다. 디카프리오와 놀런은 대본에 대해 몇 달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놀란은 "영화에서 추진력인 그의 캐릭터의 감정선을 확실히 드러내자" 는 주문을 받아 대본을 다시 쓰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2009년 2월 11일, 대본은 워너 브라더스에 발표되었다. 인셉션으로 매입되어, 놀런에 의해 쓰인 자세한 대본으로.

장소와 세트

기본화면은 2009년 6월 19일 도쿄에서 시작, 사이토가 처음 코브를 고용해 헬리콥터에 태우고 도시를 나는 장면이다.

촬영진은 영국으로 옮겨 카딩턴, 베드퍼드셔, 런던의 북쪽의 개장한 항공기 격납고에서 촬영했다. 거기서 30도 기울어지도록 지어진 호텔 바 장면을 찍었다.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가이 헨드릭 다이어스(Guy Hendrix Dyas), 특별 효과 담당 크리스 코볼드, 포토그래피 감독 월리 피스터에 의해 호텔복도 또한 만들었는데, 꿈 2단계 중에서 360도 회전해서 중력의 방향이 하나씩 생기도록 만들었다. 360도 복도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서 영향을 받았다. 놀란은 "그 발상, 기술, 철학과 그리고 그것들을 액션 시나리오에 적용하는 발상력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 말했다. 영화 제작자는 일반적으로 복도를 40피트(12m) 길이로 만들 계획이었지만 액션의 연속된 장면에서 더 정교해져, 홀의 길이는 100피트(30m)로 늘어났다. 복도는 같은 거리로 밖에 나와있는 커다란 8개 동심원 링에 매달려 커다란 전기 모터 2개로 돌아갔다. 아서를 연기한 조셉 고든 레빗은 돌아가는 복도에서 싸우는 법을 배우는 주마다 "커다란 쳇바퀴" 안에서 도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놀런은 장치에 대해 "엄청난 고문기구 같다; 우리는 일주일 내내 조셉을 허우적거리게 했지만 마지막에 장면을 봤을 때, 우리가 전에 본 어떤 것도 되지 못했다.(그만큼 대단했다) 복도의 리듬은 특이했고, 우리가 그걸 볼 때, 당신이 그 원리를 안다고 해도 인식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불안하게 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조셉은 "그 육 주는 마치, 밤에 두들겨 맞고 집에 오는 것 같았다... 벽에 있는 조명기구들이 바닥으로 다가오고, 당신은 그것들을 가로지를 올바른 타이밍을 골라야 하고, 만약에 그렇게 못하면, 떨어지게 된다." 고 회상했다. 2009년 7월 15일, 런던 대학교 UCL에서 촬영을 했는데, 스토리 상 파리 안의 건축대학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촬영진은 코브가 건축대학(입구로 사용된 장소는 갈리에르 박물관)에 들어가는 장면을 찍기 위해 프랑스로 옮겼고 아리아드네와 코브 사이의 중심이 되는 장면, 작은 식당(프랭크 거리와 부쉬 거리 코너에 허구적으로 세운 세트) 안과 비라켕 다리(Bir-Hakeim bridge)를 찍었다. 식당 폭발 장면은 지역 관계자의 거부로 진짜 폭약을 사용할 수 없었다. 폭발효과를 만드는데 고압 질소가 사용되었다. 피스터(Pfister)는 확실히 촬영을 해도 좋을 때까지 고속 카메라 6대를 사용하여 각각 다른 앵글을 찍었다. 시각효과팀은 구성을 강화하여, 파괴력과 날아디는 잔해를 더했다. 아리아드네가 다리를 만들 때는, 초록 화면과 CGI가 그 자리에 있었다.

탕헤르, 모로코, 뭄바사 두 번, 코브가 임스와 유서프를 고용한 장소다. 추격전 장면은 역사적인 메디나 지구(medina quarter)의 길거리와 골목에서 촬영했다. 이 장면을 찍을 때, 피스터는 핸드 헬드 카메라(hand-held camera, 소형·경량·저소비 전력의 특성을 가진 기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텔레비전 카메라. 예능방송에서 주로 씀)와 스테디캠(steadicam, 영화나 방송 등에서 역동적이고 흔들림없는 영상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촬영장비)를 섞어 작업했다. 탕헤르 또한 사이토의 마음을 처음 공격했을 때의 폭동 장면을 찍었다.

촬영진은 워너 브라더스의 사운드스테이지(sound stage, 영화 등의 사운드 필름을 제작하는 방음 스튜디오)에 사이토의 일본 궁전 내부(외관은 말리부 해변에 조그맣게 지어졌다)를 포함한 몇몇 세트가 지어져 있는 로스앤젤레스 구역으로 움직였다. 식당은 1603년 건축된 니조성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 세트들은 일본에 서구의 영향이 섞인 건축물에서 기반했다. 촬영진은 또한 화물기차가 길 중간에 나타나는 차 추격 장면을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downtown Los Angeles)의 길에서 연출했다. 이것을 하기 위해, 영화 제작자는 견인 트레일러의 차대를 기차 엔진으로 구성했다. 복제품은 진짜 열차의 부분에서 가져온 섬유유리(fiberglass) 주형으로 만들어진 후 색깔과 디자인을 맞췄다. 또한, 차 추격전은 폭우 한가운데에서 찍어야 했지만 LA 날씨는 일반적으로 맑음을 유지했다. 영화제작자는 할 수 없이 촬영진이 흐리고 질척한 인상을 받도록 정교한 효과를 만들었다(예시, 옥상의 물대포). LA는 또한 포드 밴(Ford Econoline)을 슐러하임 다리(Schuyler Heim bridge)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밀어내는 클라이막스 장면을 찍은 장소다. 딜립 라오에 따르면, 이 장면은 카메라 밖에서 밴을 몇 달에 걸쳐 찍었다. 밴이 물로 떨어질 때, 배우들은 무서워하지 말아야 했다. "그 장면을 연기할 거냐고 묻는 건 좀 안 좋은 질문이었다." 킬리언 머피는 설명했다. 배우들은 산소 탱크로 숨쉬면서 물 밑에 4, 5분간 있어야 했다. 이 씬에선 배우들이 번갈아 짝 호흡을 했다. 코브의 집은 패서디나에 있다. 호텔 복도는 컬버시티(Culver City)에 있는 CAA 건물에서 찍었다. 림보는 LA와 모로코를 번갈아 가며 만들었고 해변 씬은 CG로 건물을 만들고 팔로스 버디스 해변(Palos Verdes beach)에서 찍었다. LA의 N 호프 다운타운(N Hope St.)이 림보의 주요 촬영장소가 되었으며, 초록색 스크린과 CG과 꿈 풍경을 만들었다.

촬영의 마지막 단계는 2009년 11월 말 앨버타주에서 찍었다. 장소담당 매니저(location manager)는 산 위의 임시적으로 닫힌 스키 리조트를 발견했다. 정교한 세트는 근처 캐나다의 의자식 스키 리프트로 모여, 세 달간 지었다. 제작진은 결국 도착할 거대한 눈보라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스키 추격전은 놀런이 좋아하는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제 6탄-여왕 폐하 대작전(1969) 에서 영감을 받았다. 놀란은 "007 영화를 모방하려고 노력하면서 내가 좋았던 건 그 영화엔 액션, 스케일, 로맨스, 비극, 그리고 감정이 엄청난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라 밝혔다.

촬영기법

영화는 중요한 장면은 65밀리로, 공중씬은 비스타 비전(VistaVision)으로, 대부분 장면은 35밀리 영화로 찍고 포맷(anamorphic format)을 사용했다. 놀런은 어떤 장면도 그가 다크나이트에 썼던 IMAX카메라로 찍지 않았다. "영화가 가능성있는 공상장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IMAX 사이즈의 카메라로 찍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꿈에서 더 나아가, 가능한 한 현실감 있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포맷을 매우 좋아하지만 IMAX 수준의 카메라에 얽매일 필요는 없었다." 놀런은 말했다. 놀런은 또한 프라임렌즈(prime lenses)를 쓰는 것을 선호했기 때문에 영화의 어떤 장면도 3D로 찍지 않기로 결정했다. 놀란은 3D 영화의 흐릿한 영상을 비판했으며 그런 영화는 현실적인 거리감각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3D 대 2D라고 부르는 건 부적절한 명칭 같다. 영화의 모든 장면은 삼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깊이를 알리는 정보 95%는 교합, 해상도, 색깔, 기타등등에서 나오므로 2D 영화라고 부르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놀런은 후반 제작 때 인셉션을 3D로 전환하는 테스트를 했지만 그가 만족할 만큼 전환을 완료할 시간이 부족했다. 2011년 2월 조너선 리브스먼(Jonathan Liebesman)은 워너 브라더스가 블루레이 영상을 위해 3D 변환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월리 피스터(Wally Pfister)는 각 장면과 꿈단계에서 독특한 장면을 제공했다. 산악숲의 춥고 깨끗한 모습이 나타나게 했고, 호텔 복도는 따듯한 빛깔이 나오도록 했으며 벤 안의 장면은 중성적인 색이 나오도록 했다.

놀런은 영화에 대해 "현실의 단계와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현실의 자각을 다뤘다. 현시대의 공간에 기초한 액션 영화지만, 약간의 공상과학적인 면도 있다" 고 말하며 영화를 묘사할 때도 "어느 정도 범죄 영화 구조로 된 상당히 큰 앙상블 영화다. 지구를 가로지르는 모험인 것이다." 라고 표현했다.

시각효과

인셉션에서 꿈속의 장면들을 위해, 놀란은 약간의 CG를 사용하고 가능한 곳에선 물리적 효과를 선호했다. 놀런은 "카메라 안에서 가능한 한 많이 (물리적 효과를) 이용하는 것은 나에게 항상 정말 중요하다. 그런 다음, 필요하다면, 컴퓨터 그래픽은 무언가를 짓거나 당신이 물리적으로 달성하려는 것의 가치를 높이는데 유용하게 쓰면 된다." 고 말했다. 시각적 효과를 위해, 시각효과 담당자 폴 프랭클린은 산악숲 세트의 미니어처를 만들고 그것을 영화에서 폭파시켰다. 무중력의 격투씬을 찍을 때는 "물리처럼 미묘하게 시간과 공간을 구부리고" CG를 바탕으로 이용했다.

가장 도전적인 효과는 "림보"의 도시를 만드는 일이었다. 제작동안 계속해서 생각이 발전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은 놀런이 "뭔가 싸늘하고, 깨끗한 현대 건축물이 있지만 바닷속에서 상당수가 빙산처럼 부서지는" 이상적인 생각을 말하는 동안 빌딩 컨셉을 잡았다. 프랭클린과 그의 팀은 "물이 사이사이로 파도치는 빙산 버전의 고담시처럼 만들자" 고 의견을 모았다. 그들은 빙하의 기초적인 모델을 만들고 구조를 갖추고 복잡해지기 전의 도시처럼 길, 교차로, 협곡 같은 성분들을 프로그램으로 첨가했다.

참조

  1. Hans Zimmer and Tom Berenger Join Inception.
  2. 박스 오피스 모조. 2010년 12월 23일에 확인.
  3. Christopher Nolan and Emma Thomas Interview.
  4. Production Notes 2010, p. 8.
  5. Production Notes 2010, p. 10.
  6. Production Notes 2010, p. 11.
  7. Caine confirmed in small role in ‘Inception,’ Gordon-Levitt also joins the cast.


한국영화사

1980년대 (1980~1989)


1. 개요

1980년대의 한국 영화는 또 한번의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전환기는 한국영화사상 가장 중요한 개혁의 하나다. 그 중요한 개혁의 골자는 70년대 영화에 대한 정책적 통제에서 80년대의 개장정책으로의 전환에 의한 영화제작의 자유화라고 할 수 있으며 커다란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국 사회는 1979년에 제 4공화국의 막이 내리고 1980년에는 제 5공화국이 출범하였으며 이것은 곧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전환, 즉 통제적인 폐쇄사회로부터 폭넓은 개방적인 민주사회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 양시대 사이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그 변혁은 현저한 것이었다. 이러한 폐쇄로부터 개방으로의 사회적 변화는 한국영화 구조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몰고 왔다. 그리고 그 변화의 핵심은 말할 것도 없이 영화법의 개정이었다. 지난 70년대에 줄곧 정부가 연례의 영화시책에서 주장했던 유신이념의 구현이라는 특정한 정책명령이 사라지고 ‘영화 예술의 향상’이 제시되었다. 그리고 영화 검열에 있어서 크게 완화의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로서 1980년대의 한국영화는 70년대 영화와는 그 미학적 특징을 현저하게 달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변모의 원인이 되는 것을 70년대의 폐쇄적인 영화 환경이 80년대의 보다 개방적인 영화 환경으로 전환한데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영화 미학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이 된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한편으로는 영화에 주어지는 소재로서의 개방과 성장의 사회변화와 다른 한편으로는 규제의 요인으로서의 영화정책이 지양되므로서 80년대 영화의 몇가지 특징을 볼 수 있게 했다. 어둡고 긴 터널을 빠져나온 한국 영화는 본래의 작가적인 눈으로 정직하게 생생한 소재를 선택하고 표현의 영역을 넓혀 한국영화가 소생할 가능성을 보이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리얼리즘의 회복과 진지한 작품의 제작을 그 주조로 하게 된데서 깊은 뜻을 갖게 한다. 한편 매우 실험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점도 80년대 영화의 새로운 경향이었다. 이러한 경향의 영화들은 70년대에 그 작가 의욕이 억제되었던 일견의 중견 감독들과 80년대에 데뷔한 신인감독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의 진지한 눈으로 한국사회의 현실이 안고 있는 가난한 서민층의 생활이나 억압된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며, 인간 생활의 모순과 비참함을 그려냈다. 물론 80년대의 사회 현실은 5-60년대의 처참한 전후 현실과는 다르다. 한국인의 GNP가 불과 100달러였던 1950년대에서 2000달러가 넘게 죈 거대한 산업사회로 발전함에 따라 괄목할 만큼 달라진 사회적 변화,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문제들도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가장 대중적인 오락 영화는 다시 멜로드라마가 차지하게 되었는데,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대잠한 에로티시즘이 그 주조가 되었다. 이것도 역시 영화 검열이 완화되면서 나타난 경향이다. 70년대에 있어서는 남녀간의 농도 짙은 섹스 장면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이 밖에 80년대의 영화 장르는 사극 영화와 종교영화의 새로운 대두가 주목되었다. 한편 활극과 희극 영화들이 잠시 살아났다가 쇠퇴했으며 70년대까지 정책적인 장르였던 군사영화, 반공영화,계몽영화 등은 거의 눈에 띄지않게 되었다.

2. 새로운 영화 미학의 시도들

먼저 50년대에 데뷔한 거장 유현목이 만든 <사람의 아들(1980)>을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민요섭이라는 한 이단적인 신학생의 사회참여의 신념과 행동을 심각하게 묘사하고 있다. 어느 날 그가 자신이 믿어왔던 이단적인 신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지만 결국 그의 광신적인 추종자에 의해 살해당하게 된다. 사회참여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70년대에 있어서는 용납되지 않았던 주제다. 유현목은 70년대 오랜 슬럼프에 빠져있다가 <사람의 아들>에서 또한번 그의 독특하고 강렬한 사실적인 영상미학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60년대 주요한 활동을 한 임권택 감독의 작품으로는 <짝코(1980)><안개마을(1982)><불의 딸(1983)><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4)><길소뜸(1985)><씨받이(1986)><티켓(1986)> 등이 있고 그의 작품은 현실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냉철한 인식을 통해서 그것을 완벽한 영상으로 표현하는 오소독스한 연출을 찾아볼 수 있다. 임권택의 작품 속에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만다라><길소뜸>이 있다. <만다라>는 베를린 영화제의 본선에 올라크게 평가되었고 이어서 세계각국의 영화제에 초청되어 한국영화의 수준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길소뜸> 역시 베를린 영화제의 본선에 올라 국제적으로 주목받았던 작품으로 6.25동란으로 헤어지게 된 남녀가 휴전 후 30년이 지나 아들을 찾기 위해 애쓰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는 극적 감정을 전혀 배제한 카메라의 객관적 응시를 통해서 시간적인 매몰 속에 묻힌 분단 민족의 전쟁과 찢겨진 남녀의 애정, 그리고 끝내 친자 확인을 거부하는 인간의 변화에 깊은 비판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통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그렸다. <길소뜸>은 또한 시카고 영화제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정진우가 감독으로 데뷔한 것은 1963년 <외아들>로 였다. 25세에 감독이 된 그는 60년대의 청춘영화의 기수로 젊은 세대들의 욕구불만과 센티멘탈리즘을 담은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편 그의 1982년작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는 도시의 가난한 처녀가 돈에 팔려 어느 낙도에 작부로 가는 데서 시작한다. 낙도로 팔려간 작부는 뱃군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며 생선 한마리 값에 몸을 팔아야한다. 그녀는 한 선원과 사랑을 하게 되면서 섬에서 탈출하려고 한다. 정진우는 남해 낙도에 로케이션을 감행해 자유를 갈망하는 한 여인의 처참한 생존 싸움을 고발적으로 묘사했다. 조직적인 폭력배의 그물 속에서 이처럼 생존의 자유를 위해 몸부림치는 여인을 치열하게 묘사한 작품은 보기 힘들었다.
70년대 데뷔한 이두용과 이장호는 임권택과 함께 80년대 대표 감독들이었는데, 이두용은 70년대에 <잃어버린 면사포>로 데뷔했다. 그는 지금까지 50여편 가량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피막(1980)><최후의 증인(1980)><욕망의 늪(1982)><물레야 물레야(1983)><장남(1984)><뽕(1985)> 등이다. 이중 <물레야 물레야>는 그의 가장 중요한 대표작으로 이조시대 유교적 신분 계급사회의 제도와 관습하에서의 여인의 비참한 운명을 다룬다. 그러나 이 영화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거의 금욕적일 만큼 높은 의식성의 미학을 보이게한 영화 스타일의 확립이다. 이 영화는 엄격하게 억제된 모든 화면과 결백하리만치 정서가 억제된 영상의 쌓아 올림을 통해서 아름답고도 슬픈 한 여인의 비극을 의식화했다. 이 영화는 1984년 깐느영화제에 참가해서 ‘어떤 시선’부문의 한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이 밖에 이두용은 현대의 한국 가정에 있어서의 장남의 역할과 가족구조의 의미를 다룬 <장남>과 일제 식민시대에 있어서의 삶의 고통을 성적 해학으로 묘사한 <뽕>을 만들었다.
이장호는 80년대 한국영화에 가장 정력적인 영화활동을 했는데, 그는 영화의 흥행면에서도 방대한 관객동원을 하였을 뿐 아니라 문제작이나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는 면에서 또하나의 작가적인 개성을 뚜렷이 하고 있었다. 이장호의 작품으로는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어둠의 자식들><낮은 데로 임하소서(1981)><바보들의 행진><과부춤(1983)><어우동(1985)> 등이 있다. 그의 영화에서 지적될 수 있는 특징 중의 하나가 그가 만든 작품들이 심각한 주제나 문제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대중적 공감대를 지니고 있다는 점인데, 흔히 예술작품은 관객이 적고 흥행작품엔 예술성이 빈곤하다는 영화계의 통념을 이장호는 보기 좋게 깨뜨렸다. 이러한 예술성과 대중성의 동조를 보게 하는 그의 주요작품들의 주인공은 거의 현실사회의 밑바닥에 깔린 비천한 인간들이다. 그러나 가난하고 비천한 인간들을 취급한 감독들은 얼마든지 있다. 이장호는 이러한 인간들을 다양한 영화미학을 통해 호소력 강하게 그리고 있다.

3. 에로티시즘류의 멜로드라마

80년대 만들어진 한국 영화 중 뚜렷한 기세를 회복한 것은 멜로드라마이다. 70년대에 만들어진 애정물이나 통속물은 전체 제작편수의 약 40% 정도였는데 반해 80년대의 비율은 15%상승한 55%이다. 이로서 긴장되고 정서가 메마른 시대에는 멜러 드라마가 감소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다. 80년대의 멜로드라마의 회복은 그런 의미에서 전반적인 사회분위기의 완화를 대변하며 내용 부분에 있어서는 짙은 에로티시즘에 의존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으로 1981년 박봉호의 <자유부인>과 김성수의 <색깔있는 여자> 그리고 이두용의 <욕망의 늪(1983)>, 이장호의 <무릎과 무릎 사이(1984)>가 있다. 이러한 영화는 대개 기혼 여성들의 사생활을 다루었다. 청춘영화와 10대 청소년영화는 김응천과 문여송이 집념을 가지고 만들어 왔다. 특히 김응천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꿋꿋이 살려는 청춘군상을 그려 왔으며 긍정적인 삶의 의지를 사랑, 우정, 노동 등을 통해 긴장하게 그려내면서 뮤지컬 영화로의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갈채><깨소금과 옥돌매>(1982-83) 등이 그러한 작품들이다. 문여송도 <사랑만들기><연인들> 등의 작품을 만들었다. 1983년 <꼬방동네 사람들>로 데뷔한 배창호는 <철인들><적도의 꽃><고래 사냥><그해 겨울은 따뜻했네>(1983-84)와 <고래 사냥2><황진이><기쁜 우리 젊은 날>(1985-87) 등을 만들며 한국 영화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활발한 활동을 했다.

4. 사극 영화의 새 경향 및 80년대의 신인 감독들

80년대의 영화제작 경향의 하나로 사극 영화의 부활을 가져다주는 의미는 크다. 1970년대의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한 후 실상 제작비가 많이 드는 역사극은 영화제작에서 거의 그 자취가 사라지고 대신 안방 극장의 단골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80년대로 넘어오면서 역사극은 새로운 모습으로 영화 제작에로 복귀되었다. 5-60년대 사극이 압도적으로 재미있는 야사나 고전 소설을 각색한 사극 멜러 드라마와 궁중 비사, 권력간의 싸움을 그린 궁중 사극 이었던데 반해 80년대의 사극 영화는 이것과는 훨씬 다른 의미의 작품으로 역사 속에서의 낡은 제도와 관습을 비판하며 그것을 새로운 영화미학으로 끌어들이려 시도했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이두용의 <피막(1981)><물레야 물레야> 등 다수의 작품들이 제도와 관습을 비판하면서 보다 더 서민적, 민중적 입장을 취했고 임권택의 <흐르는 강물을 어찌 막으랴(1984)>, 이장호의 <어우동(1985)> 등이 그것이다. 이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과거의 사극에서처럼 왕후나 권신 또는 역사 속의 유명한 위인이 아니라 비천한 서민들이며 이들은 제도와 관습에 의해 희생되는 사람들이다. 서민 사극으로 되살아난 이같은 역사에 대한 영화감독들의 태도에는 영화미학에 관한 관심과 함께 6-70년대 이후 폐쇄되어온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이장호의 <어우동>은 사극영화로는 최대의 흥행적 성과를 거두어 사극제작의 촉진제가 되기도 했다.

80년대 영화계는 또한 신인 감독들에게 보다 많은 등장의 기회를 가져다 주었는데, 이러한 신인 감독들 중에서 비교적 주목해야할 사람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배창호는 <안녕하세요 하나님(1987)><꿈> 등 활발한 활동으로 자신의 영화스타일을 확립하였고 하명중은 <땡볕><태>(1982-85)를 만들어 주목을 받았다. 이 중 <땡볕>은 1985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출품되어 작품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영화적인 감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은 장길수는 <밤의 열기 속으로(1985)><레테의 연가(1987)> 를 만들었고 정지영은 <거리의 악사(1987)><위기의 여자(1987)> 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또한 신승수는 1985년 <장사의 꿈>과 1987년 <달빛 사냥꾼>을 통해 현대 사회의 모순 속에 살아가는 젊은이의 고뇌를 유연한 감성으로 표현했고, 박철수는 <어미(1985)><안개기둥(1986)> 등 현대사회의 모순과 가정생활의 위기를 다룬 작품들을 만들었다. 대개 80년대 신인 감독들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해서 그들 나름대로의 작품세계를 그려내었는데, 어느 면에서 이들은 선배들이 제시하고 있는 심각한 주제나 소재, 그리고 원숙함이나 실험성 등이 결여되어 있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90년대 한국영화의 또다른 창조적 기여를 위해 최선의 노력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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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 1990년대 (1990~)  (0) 2014.07.04

한국영화사 1990년대 (1990~)


1. 개요

1990년대의 중요한 사건은 1993년 문민정부의 출범과 1998년 50년만의 평화적 정권 교체이다. 감시와 통제의 지난 7-80년대 상황 속에서 이런 역사적 사건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던가. 한국영화계 역시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연례없는 호황을 누릴 수가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한 대기업의 영화업 진출은 지난 80년대 말 UIP 직배 파문으로 크게 위축되어 있던 한국 영화계에 큰 힘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비디오 시장의 호황과 케이블 TV의 등장으로 소프트웨어의 필요성이 절실해 졌고 대기업들은 다량의 소프트웨어 확보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단관 경영의 극장가가 복합 상영 시스템으로 대형화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도 대기업 자본 유입의 영향이 크다. 신인 감독의 대거 등장 또한 90년대의 중요한 특징인데, 대기업에 종속된 자본에 의해 상업적 논리에 입각한 감독 데뷔가 많은 문제점이 발견되기도 했다.
1990년대 초입부터 감지되기 시작한 장르적 상상력에 대한 경도는 두 가지로 원인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하는 한국영화의 산업추세이며 다른 하나는 전 세대와는 달리 영화적 세례를 충분히 받고 영화 연출 분야에 뛰어들고 있는 세대의 출연이다. 이때부터 허구의 구경거리라는 게임의 규칙을 만끽하려는 조짐이 나타났던 것이다. 스타일에 대한 자의식이 두드러지는 반면 잡종 장르에 나타난 빈약한 상상력 또한 나아지게 되었다. 오랫동안 산업이 정체되어 있던 까닭에 산업체계와 필연적으로 맞물리게 되어있는 장르적 표현 관습이 취약했던 한국 영화는 비로소 장르의 규칙과 긴장을 이루는 관습을 축적시킬 기미를 보인다.
또한 90년대는 영화가 문화로서 확실하게 정착되는 지점이기도 했는데 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수많은 영화제의 개최 또한 영상문화의 폭을 넓히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이는 서울 중심의 집중을 해소하기위해 지방자치제의 도입으로 인한 문화의 분산화 덕택이다. 1996년 개막한 부산 국제 영화제는 아시아 중심의 예술영화를 선보이며 영화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의 사고를 넓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98년에는 3회를 맞이하게 된다. 1997년에 개막된 부천 판타스틱 국제 영화제 역시 오락영화만의 축제를 표방하며 세계 각국의 영화를 접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여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 외에도 서울 국제 독립 영화제, 여성 영화제, 인권영화제 등 특징적 주제의 영화제가 속속 개막되어 알찬 영화 문화의 시간을 경험케 하였다. 그러나 1997년 말부터 불어닥치기 시작한 IMF 경제한파로 인해 다시금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어 영화제작 환경을 어렵게 하고 있으며 대기업의 계속되는 영화 제작의 실패로 인하여 다수의 기업들이 영화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국 영화계가 어떤 미래를 가질지는 의문 부호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

2. 중견감독들의 활약

먼저 임권택 감독은 <개벽(1991)>으로 90년대를 시작한다. 1993년 작인 <서편제>는 한민족의 고유한 정서인 한(恨)을 임권택만의 깊이와 무게로 표현해 낸 판소리 영화로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관객동원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그는 이후 <태백산맥(1994)><축제(1996)><창(1997)>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활동과 성과로 거장의 입지를 굳힌다. 한편 박철수 감독은 <301 302 (1995)><학생부군신위(1996)><산부인과(1997)> 등의 작품으로 저예산 영화의 길을 모색하는데, 기존의 영화들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던 소재와 한달을 넘지않는 짧은 제작기간 등 그의 새로운 영화 제작방식은 자금력이 미비한 한국영화에 새로운 방법론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80년대 말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장선우, 박광수, 정지영 등의 감독들은 제각기 자신 나름대로으 색깔을 완성하며 꾸준한 작업을 해오고 있는데 정지영 감독은 <남부군(1990)><하얀전쟁(1992)>등 정치적인 주제의 작품을 만들어 오다가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의 흥행 실패로 작품 활동을 중단했다가 <블랙잭(1997)>이라는 미스테리 멜로물에 도전해 흥행을 노렸지만 여전히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박광수 감독은 70년대 노동운동가의 삶을 그린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1995)>로 '1990년대 최고의 성과'라는 찬사를 받으며 작품성과 흥행 모두 성공하지만 현재 잠시 활동을 접어둔 상태다. 장선우 감독의 행적은 90년대 한국영화계의 화제인데, <경마장 가는 길(1992)>로 그 불씨를 던지더니 포르노그라피를 표방한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4)>라는 영화로 지식인 사회의 허위를 풍자하는 야한 농담을 시작한다. 1996년에는 <꽃잎>으로 80년대 광주항쟁을 강간당하는 어린 소녀로 묘사하여 그의 여성관에 관한 수많은 억측과 인간성을 시험당했으며 1997년에는 <나쁜 영화>라는 의도적으로 형식을 파괴한 삐딱한 10대들의 삶을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에서 그려내 또한번 화제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의 계속되는 실험적 활동은 한국 영화사적으로도 흔치 않는 일이다.
또한 오랜 만에 작품을 선보인 중견감독들도 눈에 띄었는데, 이장호 감독은 <천재선언(1995)>을 만들어 사회 풍자와 은유의 예리함을 표현했고, 유현목 감독은 <말미잘(1995)>을, 정진우 감독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1995)>, 배창호 감독은 <러브스토리(1996)>를 만들었으나 모두들 전작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평가를 받아 예전의 화려했던 명성을 되찾는데 역부족인 듯했다.

3. 90년대의 신인 감독

1992년 김의석 감독의 <결혼 이야기>는 상업적 한국 영화의 모델을 제시한다. 기획-시나리오-연출- 후반작업-홍보 등에 걸친 영화의 전과정에서 뛰어난 팀워크를 보여 준 것이다. 또한 이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의 도입하는 전기를 마련 한국 영화의 다양화에 앞장서는 구실이 되기도 한다. 대기업의 자본 유입으로 인한 90년대 신인 감독의 데뷔는 러쉬를 이루는데, 그 중 몇몇의 감독들은 계속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반면 단 한 번의 연출로 영화계를 떠난 감독들도 많다.
80년대 데뷔한 강우석 감독은 <투캅스(1994)>의 성공으로 블랙 코미디 장르의 개척과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사업가로 성공하는데, <마누라 죽이기><미스터 맘마><투캅스2> 등으로 계속적인 흥행을 이룬다. 흥행성 위주의 감독 이외에도 독특한 개성을 지닌 신인 감독들도 많았는데, 이명세의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개그맨(1989)> 으로 흥행으로서는 불행한 데뷔를 한 그였지만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1)><첫사랑(1993)><남자는 괴로워(1995)> 등의 작품으로 자신의 독특한 영화 미학을 구축해냈는데, 만화적인 세트 공간에서 벌어지는 그의 모든 이야기는 신선하였고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어 낸다.
여균동은 <세상 밖으로(1994)>라는 무정부주의적인 주인공의 삶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는 블랙코메디로 흥행과 비평면에서 모두 주목을 받았는데, 이후 <맨?(1995)><죽이는 이야기(1997)>등 자의식이 강한 영화들로 계속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장미빛 인생(1994)>으로 평단의 이목을 집중하며 등장한 김홍준은 80년대의 연장선상에서 사회 속에 그늘진 이들의 이야기들을 하고있는 지식인 감독으로 영화 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많은 글로서 자신을 드러냈던 인물인데, 최근 <정글스토리(1996)>라는 록 영화를 만든 후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의 1인 프로그래머로 활약하고 있다. 이 밖에도 <게임의 법칙> <본투킬>의 장현수, <그대안의 블루> <네온 속에 노을지다>의 이현승, <손톱> <올가미>의 김성홍, <절대사랑> <피아노맨>의 유상욱, <은행나무 침대>의 강제규, <영원한 제국>의 박종원, <개같은 날의 오후> <인샬라>의 이민용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많은 신인 감독들이 있으며 한국 영화계를 풍성하게하는 밑거름이다.

4. 독립영화의 붐

1990년대에는 충무로와 대기업의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영화들과는 제작형태를 달리하는 독립영화.단편영화들이 각광을 받았는데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는 기록 영화로서는 최초로 극장개봉을 한 작품이다. 특히 <낮은 목소리>는 일제 치하에서 정신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의 아픈 기억에 대한 진술과 현재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 사회적 관심을 높이는데 기여하였고 1997년 <낮은 목소리2>도 개봉된다. 박재호 연출의 <내일로 흐르는 강(1996)>은 6.25전쟁으로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의 한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가족의 문제를 그리면서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금기시 되어온 동성애를 사회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묘사 했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배용균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1995)> 역시 독특한 시각을 가진 초현실주의적인 예술적 작품으로 그의 감독 이력을 빛나게 했다. 신인 감독의 영화 치고는 이례적으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은 <돼지가 우물에 빠진날(1996)>은 복잡한 의미를 지닌 영화인데 홍상수의 차기작을 기대해 봄직하며 단편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여성 감독 임순례의 데뷔작 <세 친구(1996)>역시 섬세한 연출력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5. 의문부호 속의 한국영화

한국 영화는 오랫동안 대중과의 교감 통로를 잃어버린 상태로 있었다. 대중적 영향력 면에서는 방송에 비할 바가 아니었으며, 문화적 영향력 면에서는 아무도 자리를 인정하지 않는 구석에 몰려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변화하는 내적, 외적 상황의 조건에 밀려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리를 찾으려는 기운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대중 문화의 중심에 편입된 한국의 영화 문화는 그러나 산업과 장르의 미묘한 관계를 정비하기에는 아직 겨를이 없어 보인다. 아직 정착되지 않은 형태로나마 지금의 제작 체계는 자본의 견제가 훨씬 심해지는 체계를 지향하고 있다. IMF 경제 한파와 대기업의 영화업 포기 등 현재 한국 영화계의 자금력이 난국에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의 영화제작은 사치일런지도 모른다. 이런 진공 상태를 뚫고 나가지 못할 경우 한국영화가 설 수 있는 입지는 산업면에서나 문화면에서나 장기적으로는 점점 좁아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90년대의 막바지에 다달아 있는 한국 영화는 모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저항을 얼마나 잘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에 따라 최종의 성과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 문헌]

1. 한국 영화 발달사 (유현목) - 책누리

2. 한국 영화의 이해 (이중거 외) - 예니

3. 한국의 영상문학 (민병기 외) - 문예마당

4. 어떤 영화를 옹호할 것인가 (강한섭) - 부키

5. 한국 영화 읽기의 즐거움 (김지석) - 책과 몽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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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 1980년대 (1980~1989)  (0) 2014.07.04

1.20만원으로 단편찍기 도전

20만원이라면 어떻게 보면 많은 금액이라고도 할수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변에 단편제작자들이 보통 드는 비용을 감안해본다면 평균
제작비가 80~300만원 정도인것을 알수있습니다.

(촬영장비가 전혀 없는 상태의 제작비 산출입니다.)

물론 좋은 장비와 후반작업까지 더한다면 1000만원까지 가는 경우도
봤습니다.
필름 작업으로 가게되면 16mm같은 경우도 3000만원이상 소요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작비라는 것은 투자 비용에 따라 장비와 기타 셋트촬영이나 특수촬영을
가능 하도록 해줍니다.그래서인지 제작비의 정확한 기준점은 없다고
말할수있습니다.

본 글은 절대적으로 최소 20만원정도에 단편을 찍는 방법을 알여드리고자
합니다.
물론 단편 입문하시는 분들을 위한 글이고 이 글을 쓰는 저 또한 20만원의
제작비로 두편의 단편영화를 제작한 경험으로 설명한것이니 보시는 분들과
생각이나 다른 의견적인 차이가 있을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2.저예산 단편 알아둘점

단편에 만약 제작비를 20만원을 책정했다면..많은 것을 고려해야 할것입니다.
가장 크게 고려해야 할점은 바로 촬영기간입니다.
촬영기간이 길면 길수록 제작비는 배로 증가하게 됩니다.그이유는 장비를
대여할때 하루에 들어가는 장비대여료가 만만치 않기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될수있으면 촬영은 모두 2일 안으로 스케줄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2일이면 약 60분 테잎 2개를 소비할수있고 15-20분 완성될수있는 단편을 만들수가
있습니다.
60분 분량의 테잎 두개면 어느정도 충분히 영화를 편집할수있는 충분한 소스를
확보할수 있게 됩니다.

저예산 단편은 짧은 기간에 최대의 효과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렇기때문에 2일동안 촬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철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2일이라는 시간이 결코 긴 시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제 첫날은 오전 10시에 정도에 시작한다고 가정한다면 촬영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됩니다.
그러면 오후 부터 촬영에 들어가게 되는데..만약 영화가 계속 야외에 낮장면이라면
계절에 따라 틀릴수도 있지만 2일동안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장비나 기타 촬영장소에대한 정보를 정확히 숙지하고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버릴수있는 일들 줄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3.촬영전 초기 진행 (연출)

영화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만약 촬영때 감독이 중심을 잃게 된다면 영화의 전체적인 진행 스케줄은 무너지게
됩니다.
영화 촬영날은 두번째 찍는 다라는 느낌이 들정도로 사전에 완벽한 계획이 필요합
니다.
계획하는 시간은 돈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달이상 여유를 잡아서 치밀하게
계획합니다.

일단 촬영날 시간을 잡아먹는것을 생각해봅니다.
첫번째 카메라 앵글 잡는데서 많은 시간이 소요 됩니다.
실제 촬영을 하면 콘티가 있다고 하더라도 정확한 배경과 콘티가 일치 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것은 실제 배경에 잡히는 카메라 앵글이랑 생각했던 연출 앵글이랑 다른 느낌을
가지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럴때는 미리 카메라 동선 콘티를 만들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일반 디지탈카메라를 이용하여 카메라 각 컷마다 카메라 시작 장면과 앤딩장면을
찍어서 미리 앵글을 확인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디카의 동영상 촬영으로 미리 카메라 움직임을 잡아봅니다.
이렇게 촬영된 소스를 연결하여 에니메틱스(Animatics)제작해봅니다.

만약 콘티를 그릴수있는 그림솜씨가 없거나 도움을 얻을수없다면 이렇게 주변
친구에게 엑터ACTOR를 부탁하여 디카로 콘티를 찍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정리하여 콘티로 프린팅하면 오히려 더 정확한 콘티와 다른 스텝에게
정확한 정보를 줄수있는 장점이 됩니다.

이렇게 카메라와 연출 동선을 미리 해보는 이유는 단편영화를 몇번 해보신 분이라면
콘티데로 찍어도 나중에 생각보다 소스가 모자라는 경우가 많기때문입니다.
그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연출과 실제 촬영하는 비쥬얼은 느낌이 틀릴수도 있기때문
입니다.

콘티는 의외로 진행성이 매우 빠르게 됩니다.

같은 내용을 예를들어 컷만화로 그리고 영상을 찍었다고 가정해봅니다.
컷만화는 2-3컷에 진행될 짧은 내용을 영상에서는 길게 표현됨을 알수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정지 이미지와 영상이 가지고 있는 특성때문입니다.

컷은 단지 감정의 흐름만 잡아주고 보는 독자에게 나머지 감정선을 알아서 살리라는
숙제를 주게됩니다. 반면 영상은 그 감정선을 어느정도 표현해주어야 합니다.

콘티는 2D컷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런 컷에 대한 영상에 연출 특성을
놓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단편을 촬영할때 감독은 항상 추가컷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감독이 촬영하면서 계속 콘티에 연출적으로 부족한 컷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장면을 다른 앵글에서 최소2개 이상 소스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꼭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훅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장면과 다음장면의 배우 행동이나 연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져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야구공을 집어서 공을 던지기 전에서 장면 컷을하고 다음 장면에서
던지는 장면이 이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는 전 장면과 비슷한 카메라 앵글이 연출되거나 배우의 움직임이 전 장면과
연결이 않될경우 큰 낭패를 봅니다.

이것은 당장 촬영때 알기가 힘듭니다.
보통 후반 작업시에 컷편집을 하면서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면 혹시나
이 장면을 다른 각도에서 찍은게 없는지 확인하다가 없으면 크게 좌절하게 됩니다.

처음 단편을 찍으면 반드시 생각한만큼 좋은 앵글이 나오지가 않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배우가 여러번 연기를 하는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다른 앵글로
2개이상의 소스를 확보하는것이 좋습니다.
이것은 어떤 장면을 여분 촬영할지는 전적으로 감독의 판단에 좌우 됩니다.
미리 콘티에서 체크를 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3.촬영전 초기 진행 (배우)

배우는 지나친 유 경험자보다는 어느정도선에 연기 경험자를 뽑는 것이 좋습니다.
배우는 필름메이커(http://www.filmmakers.co.kr/) 홈페이지나 기타 연기 카폐
같은데서 알아보시면 됩니다.

경험이 많은 유경험자는 케릭터에 대한 감독의 의도를 정확이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경우거 종종있습니다.
그것은 오랜 연기를 하다보면 자기 연기의 색깔이 강하게 생기개 되는데..
오히려 영화에서 그런 자기의 색깔을 반대로 감독에게 설득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초심의 단편 감독들은 실제 연기에대한 인지가 부족할수록 배우쪽에 끌려가기
쉽게 됩니다.
저같은 경우도 처음 단편을 찍을때 배우에게 한번 휘둘린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배우가 확실히 감독이 원하는 케릭터의 성격이 무엇이며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배우를 주변에서 친구나 가족을 섭외하는 것도 좋습니다.
어느글에서 보니 "단편영화 망하는 지름길중 가족이나 여자친구등을 출연시키는 일"
이라고 본적이 있습니다.,
물론 연기력에서 문제가될수있는 소지들이 많이있습니다.
만약 어느정도에 범위 내에 연기가 가능하다면 한번 고려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중
하나 입니다.

저같은 경우 2편의 단편에 모두 친구및 가족을 출연시켜 만족했던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독입장에서 타인보다 가족이나 친구가 오히려 작업하는데 편했던 기억이
납니다.

배우는 꼭 5~6번 이상의 배우 리허설을 가지며 감독은 이야기 시나리오에
대한 설명을 위주로 하는 것보다 케릭터의 성격을 정확히 알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에서 케릭터는 개성이있어야 하고 영화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끌어가는 인물로써
보는사람에게 확실히

"아~~저 사람은 성격이 저렇구나.."

라고 인지를 지켜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케릭터마다 프로파일을 작성해야 합니다.
행동패턴이나 말투부터 습관등등..만들어진 인물이 아니라 원래 이런인물이라는것으로
생각될정도로 케릭터의 연구가 필요합니다.

만약 각 케릭터마다 특성을 못잡으면 주변에 케릭터와 비슷한 사람들을 표본으로
연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중 하나입니다.

케릭터의 정확한 성격묘사는 단편영화에서는 크게 나타나게 됩니다.
단편은 짧은 시간안에 강한 메세지와 치밀한 연출 구조를 보여줘야 하는데
전체적으로 영화를 끌어가는 것은 대부분 케릭터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케릭터의 성격이 불분명 하다면 영화 전체적인 흐름이 산만해 질수있기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케릭터마다 프로파일을 작성하여 각 연기자들에게 정확히 인지를
시켜주는 것이 좋습니다.


4.촬영전 초기 진행 (시나리오)

시나리오는 영화의 가장 기본입니다.
그리고 이 시나리오에 따라 영화는 모두 톱니바퀴처럼 하나식 끼워져 마침
시계바늘이 돌아가게 됩니다.

시나리오는 될수있으면 많은 장소 변환이 없는 것으로 구상합니다.
일단 장소가 한번 바뀔때마다 모든 장비부터 배우까지 이동하여 다시 촬영준비를
하는데 대부분 시간이 소요 되기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상 장소는 신중할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사가 많은 영화보다는 처음 찍는 단편이라면 행동위주나 장면연출
위주의 기획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사가 많은 경우 촬영시간이 상당히 많이 소요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상 장소는 신중할필요가 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지금까지 단편을 만들면서 장소를 보고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쪽이
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장소를 찾는 경우인데...반대로 장소를 보고 그곳에
맞는 시나리오를 찾는 식입니다.

이것은 일단 장소가 완벽하게 선정이 된다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시나리오를 짤때 이미 머리에 장소에대한 정보가 있기때문에 시나리오
연출상 좀더 실제 촬영에 맞도록 쓸수가 있게됩니다.

보통 아마츄어 연기자들은 행동연기는 대부분 잘 소화하지만 대사 연기는
많은 어려움이있습니다.그래서 NG가 많아지고 많은 시간이 소요가 됩니다.

촬영 2일을 생각하고 반드시 무리하지 않는 시나리오를 구성하는게 중요합니다.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쓰다보면 순간 욕심을 내는 경우가 있는데..그럴때일수록
영화 전체 기획이나 일정을 반드시 고려해보는게 좋습니다.

후반작업이 들어가는 시나리오는 최대한 피합니다.
특히 CG나 특수효과 부분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이런 효과들이 꼭 필요하다면 사전에 도움을 줄수있는 분과 미리 약속을
정하고 반드시 그 부분에 연출에 대하여 미리 의견을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감독의 생각데로 무리한CG를 요구할경우 도움을 얻지 못하거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은 CG를 모르는 감독이라면 CG가 어떤 부분이 어려운 장면인지 인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로 전에 한 분이 자신이 생각하기에 쉬운 CG라고 부탁을 한적이있느데..
그장면은 여자가 남자를 통째로 삼키는 장면이었습니다.ㅡ.ㅡ;

반드시 CG부분이 들어간다면 CG하시는 분에게 미리 조언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4.촬영

2일동안 100-140컷을 촬영할수있습니다.
대신 이렇게 많은 분량에 촬영하려면 철저한 계획이 필요하게 됩니다.
먼저 콘티에서 첫날과 둘째날 촬영을 나누어줍니다.

촬영 날을 나누는 것은 절대적으로 장소위주로 정합니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카메라가 비슷한 컷들은 다시 정리하여 촬영날
몰아서 찍는 방법으로 합니다.

물론 이 방법의 단점은 배우의 연기의 흐름을 계속 이어갈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는 장면 찍다가 바로 다음컷에 웃는 장면을 찍게 되는
상황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배우 리허설이 중요하게 됩니다.

이야기 시간때도 상당히 중요하게 됩니다.
2틀에 주어진 것은 낮 두번과 밤 한번입니다.

첫째날 낮과 밤이있고 둘째날 낮이 한번있습니다.
(저녁은 장비 반납)

만약 첫째날 오전에 빌리고 새째날 오전에 반납한다면 밤도 2번이
됩니다.

그런데 첫날 저녁에 빌릴수있다면 첫째말 촬영전까지 간단한
장비 테스트를 할수있게 됩니다.

(물론 3일빌리면 좋지요^^)

촬영할때는 될수있으면 모든 연기자가 연기하는 장면에는 감독이 미리
연기를 하여 보여주는것이 좋은 방법중 하나입니다.
그것은 연기자가 시나리오를 받아보고 콘티를 보더라도 감독이 의도하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기가 쉽지 않기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연기전에 연기자의 연기 행동선이나 중요한 액션
포인트를 잡아주는 방법중 하나입니다.


5.장비와 대여

장비는 모두 임대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을 최소한으로 가져갑니다.

카메라는 일반적으로 단편에 사용되는 소니 PD계열이나 파나소닉 DV100
계열을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처음에는 16;9보다는 4:3비율로 촬영하여 이미지 영상을 익히는 것이
좋습니다.

16:9는 가로 화각이 크기때문에 우리가 일반적으로 봐온 NTSC 4:3비율과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단편을 찍는 분이라면 4:3을 먼저 해보시는 것을 추천
합니다.

24프레임 촬영은 필름을 견향한 모드입니다.
단지 초당 30장과 24장 촬영은 후반 작업을 완전 다르게 작업이 됩니다.
먼저 기본적인 카메라 정보나 처음 입문할때 가장 기본적인 사항들을
꼭 체크하시길 바랍니다.

조명은 일단 저예산영화에서는 포기합니다.,
조명은 좀더 전문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야외촬영에는
발전차를 동원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됩니다.
될수있다면 촬영장면중 야외 밤장면은 빼는 것이 좋습니다.

소풍때 사용하는 은박장판을 반사판 정도로 사용하는 것도 좋고 옥션
같은 쇼핑 몰에서 휴대용 형광등 조명을 사서 보조 라이트로 쓰는것도
좋은 방법중 하나입니다.

사운드는 만약 영화에 대사가 있다면 지향성 봉 마이크를 대여합니다.,
디지털 녹음이 아닌 일반 녹음 방식으로 바로 캠코더에 연결하여 사용합니다.

장비 대여는

http://www.mediact.org/web/

* 카메라 Panasonic AG-DVX100급 60,000원 / 2일
* 봉마이크 20,000원 / 2일
* 기타제료비 20,000원
* 6mm 테잎 15,000원
* 식대/교통 8,5000원 /2일

합 200,000

처음에 저같은 경우는 식대비를 우습게 봤는데..역시 전체 제작비중 식대비는
많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반드시 식대에 소요될 돈을 미리 정확히 책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보수로 도와주는 스텝과 배우에게는 절대 먹는 것에 돈 아끼지 마라"


5.스텝

적은 인원으로 원활하게 진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은 사전에 영화전 제작에 참여하는 스텝이 이미 자기가 할 역활에
대해 충분한 인지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각각 포지션에 맞게 어떤부분에서 어떻게 해야할지 미리 계획이 서있는것이
촬영때 최대한 시간 낭비를 버릴수있습니다.

감독 스텝의 모든 스케줄과 촬영날 포지션에 대해 숙지해야 합니다.
그것은 촬영날 한 부분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빠른 대처가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단지 감독은 연출이라는 일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큰 낭패를 볼수가
있습니다.

스텝은 최소 감독,촬영,조명,음향 (여기서 보조로 스크립터,소품)입니다.
감독은 모든 앵글을 촬영감독에게 지시하거나 의논합니다.
위의말데로 이미 카메라 콘티가 나왔다면 별 문제가 없이 진행될수있습니다.

처음 단편영화라면 일단 연출과 이야기 흐름에 중심을 두는게 좋습니다.
촬영,조명,음향은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도 몇번 연습하면
기본적으로 영화에 참여하는데 크게 무리는 없습니다.

대신 감독이 전벅으로 작업을 지시할정도에 스킬을 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존의 친구나 아는분에게 도움을 청하는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6.후반작업

캠코더에서 컴퓨터로 전송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한것은
아닙니다.
용산 같은데서 1394카드(1만원정도)를 구입하시고 컴퓨터에 장작하면
프리미어 같은데서 캠코더에 영상을 받을수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프리미어의 사용법은 알아야 합니다.
꼭 알아두어야 할점은 기본적인 컷편집과 소스정리,간단한 트랜지션 효과,
그리고 컬러보정을 위한 이펙트 필터부분입니다.


7.완성의 의미

처음 단편영화를 완성하고 관객이 되어 만든영화를 감상하는 그기쁨은 아마
경험해보시는 분들은 그 감동을 아실겁니다.
그만큼 단편영화는 상당히 매력있는 쟝르입니다.
그만큼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정말 영화란 무엇이고 어떤과정에서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했는지 그 의미를 조금 알수
있을 겁니다.
단편 영화를 제작하는 동안 느낌것은 제작기간동안 시간을 내주어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해줄수있는 최대의 고마움의 표시는 바로 완성작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부족한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하고 처음 단편찍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되길 바랍니다.

http://maca3d.com/macafilm.html

Q 영화분석 어떻게 하는 건가요?

일단 전제 하나 하겠습니다. '영화'에 '재미' 이외의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분들이라면, 이어질 제 글이 그다지 재미있진 않으실 것 같습니다. 이건 절대 그분들을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분들은 나름대로의 영화 선택 기준과 '재미의 방법론'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기 때문이죠. 문제(?)는 '재미 이외의 것'을 찾는 분들에게서 발견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린 정규 교육을 통해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배운 것이 거의 없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영상 시대'라는 말이 등장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영화를 공부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혹은 영화라는 건, 굳이 공부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는 나름의 언어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영화를 분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쇼트'(shot)입니다. 쇼트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현장에서 감독이 "액션!"을 외치고 "컷!"을 외친 사이에 촬영된 필름을 하나의 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편집에 의해 다듬어지고 쪼개지기도 하고요. 아무튼 영화는, 그런 쇼트들이 모여서 '신'(scene)을 이루고, 신이 모여서 '시퀀스'(sequence)가 되고, 그러면서 영화 한 편이 완성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영화를 분석하고 싶으시다면 먼저 쇼트를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카메라의 위치, 각도, 프레임 안에 있는 인물의 수, 촬영 장비 등에 따라 쇼트의 종류는 굉장히 많습니다. 일단 분석을 시작하려면, 수많은 쇼트들의 명칭과 정의와 그 일반적 쓰임새와 의미에 대해 알아야겠죠. 웬만한 개론서에서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이고, 인터넷 검색으로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쇼트의 기본 개념을 익히셨다면, 본격적인 분석 작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쇼트 바이 쇼트'(shot by shot) 방식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말 그대로 한 장면 한 장면을 꼼꼼히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굳이 자타가 공인하는 명장면이 아니더라도 좋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인상적인 장면이 있다면, 비디오나 DVD를 이용해 그 장면을 한 쇼트씩 끊어서 그 구성을 살펴보는 겁니다. 일단 텍스트로, 가장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이 본 영화 [괴물](2006)을 선택해보겠습니다. '쇼트 바이 쇼트'로 볼 신은, 현서(고아성)가 괴물의 은신처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입니다. 러닝타임은 5분37초이고 총 36개의 쇼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세주(이동호)와 함께 작은 굴 안에 숨어있던 현서는 밖으로 조용히 나옵니다(쇼트3).







현서는 괴물에게 맥주 캔을 던져 보죠(쇼트5).







자고 있는 괴물은 꿈쩍하지 않습니다(쇼트6).







현서는 세주에게, 밖에 나가서 경찰과 119를 불러오겠다면서 굴 안에 꼼짝 말고 있으라고 하죠(쇼트8).







그리고 힘차게 달려서(쇼트12).







괴물을 딛고 줄에 매달리는 데 성공합니다(쇼트15).







하지만 괴물은 꼬리로 현서를 잡아서 끌어내리죠(쇼트18).







겁에 질린 현서는(쇼트29).









눈치를 살핀 후(쇼트33).









굴 쪽으로 다시 뛰는데, 이때 깨어난 괴물은 두 아이를 향해 달려듭니다(쇼트36).











이 장면에서 가장 먼저 다가오는 느낌은 '긴장감'입니다. 이 신에서 아마 가장 핵심이 되는 쇼트는 괴물이 꼬리로 현서를 잡고 있는 '쇼트 18'일 겁니다. [괴물]의 이 신은 '쇼트 18' 전까지 긴장감을 조성하다가 슬로모션으로 현서가 뛰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는 인상적인 '쇼트 18'이 등장하고, 이후 괴물이 어떻게 반응할지를 궁금하게 만들죠. 그리고 그 결과가 괴물이 두 아이를 덮치는 '쇼트 36'이며, 신은 끝납니다.



이 신의 각 쇼트를 여러 번 돌려보면서 꼼꼼히 살펴보면, '긴장감'을 위해 봉준호 감독이 얼마나 세심하게 카메라의 움직임과 앵글과 위치와 화면의 사이즈와 쇼트의 길이를 고려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롱 쇼트와 클로즈업, 하이 앵글과 로 앵글. 고정된 카메라와 달리는 카메라 등이 적절히 배치된 가운데 현서와 세주와 괴물의 시점이 오가는 그 구성은 꽤 흥미롭죠.



'쇼트 바이 쇼트'로 신을 분석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방식이 눈에 익게 됩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쇼트 구성이나 독특한 신의 배치가 느껴지게 되죠. 그러다 보면 나무가 아닌 숲이 눈에 들어옵니다. 쇼트 구성을 사운드나 인물의 감정과 결부시켜 파악하게도 되고 불필요한 쇼트나 신을 지적할 수도 있게 됩니다. 영화의 기본 문법을 조금씩 익혀가는 과정인 거죠. '쇼트 바이 쇼트'는 기본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 작업을 통해,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카메라'라는 요소를 파악하게 되고, '시점'(point of view)이라는 존재를 느끼게 되죠. 쇼트가 어떤 순서로 편집되어 있느냐를 통해 이야기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괴물]을 장르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을 겁니다(일단 장르적 분석을 마음 먹으셨다면 해당 장르의 다양한 영화들을 접하면서 그 관습과 공식과 아이콘에 익숙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 영화는 SF 괴수 영화 장르 속에 있죠., 하지만 일본의 [고지라](1954)나 할리우드의 [에이리언] 시리즈와는 다릅니다. 게다가 이 영화는 강한 가족주의를 품고 있는 '가족 멜로드라마'입니다. 이른바 '작가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영화는 봉준호 감독의 [플란다스의 개](2000) [살인의 추억](2003)의 연장선상 위에서 바라봐야 할 겁니다. '1980년대적인 그 무엇' '추격 구도' '공간에 대한 비전' 등이 떠오를 수도 있을 거고요. 그 작업을 통해 한 명의 영화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또 고전영화를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죠. 영화에 대해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하신다면, 보약이다 생각하시고 고전영화들을 섭취하시길 바랍니다. 긴 시간을 통해 영화사에서 걸작으로 검증된 작품들은 시네마테크든 DVD든 영화제 회고전이든, 그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접하셨으면 합니다. 그러다 보면 영화라는 예술이 밟아왔던 미학적 경로가 보이게 되고, 우리가 지금 보는 영화들의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영화들 사이의 어떤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 나름의 계보도를 그릴 수도 있습니다.



고 전영화가 공부하기 좋은 점은, 이미 그 영화들에 대해 수많은 분석들이 이루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인톨러런스](1916), [마지막 웃음](1924), [전함 포템킨](1925), [메트로폴리스](1927) 같은 무성영화에서 시작해 [게임의 규칙](1939), [시민 케인](1941), [무방비 도시](1945), [라쇼몽](1950), [동경 이야기](1953), [수색자](1956) 등 수많은 고전 영화들은 두툼하게 축적된 분석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글들을 찾아 읽고 영화를 다시 한 번 보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꽤 많은 겁니다.



그렇게 고전영화에서 시작해, 이 영화 저 영화 보다 보면 어떤 감독이나 장르에 '꽂히게' 됩니다. 그땐 한두 달이든 정해놓고 그 감독의 졸작부터 걸작까지, 혹은 특정 장르의 대표작들을, 섭렵해보는 것도 좋습니다(구할 수만 있다면, 한 감독의 전작을 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이죠). 색다른 경험이 되실 겁니다.


영화평론가이며 최근 [카페 느와르]라는 영화를 완성한 정성일 선생님께 여쭤 봤습니다. "각자의 방법이 있겠지만…"이라고 운을 떼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항상 저는 그 영화를 '처음 볼 때'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땐 최상의 컨디션에서 보려고 노력하고요. 아무 정보도 없이,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그냥 영화를 쭉 봅니다. 그리고 딱 보고 나왔을 때 '이 영화의 이 부분은 도대체 뭐지?'라고 떠오르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쇼트일 수도 있고, 줄거리의 어느 부분일 수도 있고,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 엔딩이 이상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요. 그리고 그 한 가지를 풀기 위해, 영화 전체를 동원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의도와 노력을 가지고 그 영화를 다시 생각해보는 거죠."

' 질문'에 의해 분석을 시작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절박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나는 그 영화에 대해 무엇이 궁금하며,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무엇인가. 이러한 자문자답의 방식은 누구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 갱생'할 수 있는 좋은 자산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분석할 때 도움을 주는 책은 어떤 책이 있나요? collbell

일 단 전반적인 내용을 다룬 개론서부터 시작하시는 게 좋습니다(친구들끼리 스터디 그룹을 조직하시면 더 좋죠). 기본 개념을 파악하는 데, 그래도 개론서가 제일 좋거든요. 과거엔 한국 서점가에서 영화 개론서라고 해봐야 <영화의 이해>(경문사)나 <영화예술>(이론과실천) 정도가 전부였는데, 요즘은 꽤 그 종류가 늘어난 것 같긴 하지만, 아직도 <영화의 이해>와 <영화예술>은 유효한 책입니다.



끝없는 개정판을 통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영화의 이해>는(한국엔 제10판이 최신판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 영화를 분석할 때 필요한 거의 모든 항목이 들어 있다고 봐도 좋습니다. 후반부에 가면 이데올로기나 영화이론에 대한 부분도 있는데, 너무 소략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기본 상식 정도로 알아두면 좋을 사항들이고요. 특히 마지막 챕터인 '종합편'은 [시민 케인]을 11가지 관점에서 분석하는데, 꼼꼼히 읽어 두시면 영화 분석의 실제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감을 잡으시는 데 좋으실 듯합니다.



<영화의 이해>를 마스터하셨다면 <영화예술>에 도전해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영화의 이해>보다 다루고 있는 스펙트럼은 좁지만, 훨씬 더 깊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이해와 <영화예술>에서 반복해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구해서 보면 반드시 도움이 될 만한 영화들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쇼트 바이 쇼트' 분석 방식의 길잡이라면 <영화구조의 미학>(울력)을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현대영화의 몽타주>(책과길)라는 책은 아카데미 편집상을 받은 영화들 중 30편을 골라, 꼼꼼히 분석하고 있습니다. <영화 분석 입문>(한나래)이라는 책이 있는데, '입문서' 치곤 조금 난이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카이에 뒤 시네마 영화이론' 총서 중 한 권인 <쇼트>(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사진)는, 쉬운 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조심스레 한 번 권해봅니다. 그리고 <시나리오> <시점> <영화음악> <몽타주> <애니메이션> <특수효과> 등 현재 7권까지 나온 이 총서는, 기초를 닦는 덴 꽤 유용해 보입니다.


쇼트가 어떻게 구성되는지 좀 더 근본적인 원리와 실제를 알고 싶다면 <영화연출론>(시공사)을 권합니다. 사실 단편영화라도 한 편 만들어보면, 영화를 훨씬 더 잘 알 수 있죠. 이 책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면서 동시에 영화 분석에도 도움이 됩니다.


영화 분석에 있어서 장르를 빼놓을 수 없겠죠. 하지만 장르영화에 대한 책은, 한국에 의외로 적게 출간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책으로는 <할리우드 장르의 구조>(한나래)가 있겠군요. 국내 필자들이 쓴 <대중영화와 현대사회>(소도)도 일독을 권합니다. 그리고 <대중영화의 이해>(한나래)는 어렵지 않게 읽히면서, 영화를 미디어의 관점에서 다양하게 접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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